2023.08.02 (수)

폭염이 계속되는 날씨 속에 우리 구독자 여러분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뜨거운 한여름의 열기속에서 오늘의 문지레터 시작하겠습니다. 😊

🎤 두번째 시집 『미래는 허밍을 한다』 출간을 축하드려요. 출간하신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죽음에서

💧 똑똑. 거기 있나요? 무엇보다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죽음에서 사랑으로 건너온, 뉴 노멀이 될 양손잡이. 자주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사랑 발명가입니다. 저는 전처럼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밤의 속삭임에 휘둘리지 않아요. 축축하고 검은, 긴긴 터널을 지나 단단하고 초연한 얼굴로 돌아왔어요. 여기까지 무사히 미래에 도착한, 당신에게 편지를 띄웁니다. 서머-핑크색 햇빛을, 무구한 사랑을 받아주세요.

🎤 시집을 준비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혹은 가슴이 뛰는 순간은 언제이셨나요?

💧 방금 쓴 시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느껴질 때. 일상 속에서 시가 되기 이전의 장면을 발견했을 때. 표제작 「미래는 허밍을 한다」를 소리 내어 읽었을 때. ‘시인의 말’에서 두 행을 괄호 속에 숨겼을 때. 독자분들의 커다란 사랑을 마주할 때. “시 쓰기, 영원히 즐겁네?” 알아차렸을 때.

🎤 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남을 수 있는 장르인 것 같아요. 이 시집이 어떠한 분들에게 어떠한 의미로 닿았으면 한다는 작가님만의 바람이 있으신가요?

💧 무엇이든 사랑해버릴 용기가 필요한가요. 오지 않은 미래를 다만 긍정하고 싶은가요. 포옹과 다정함의 힘을 믿나요. 무심하고 지루한 세계에서도 희망의 부스러기를 발견하고 싶나요.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존재의 얼굴이 떠오르나요. 인간과 비인간, 물질과 비-물질의 차이점에 대해 주목해볼까요. 나, 사랑에 관해서라면 백 행을 쓸 수 있어요. 세계에 맞서는 다정한 방식의 선언을 듣고 싶은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일어서고 싶나요. 나만의 목소리로 허밍에 동참하고 싶나요. 그렇다면 잘 찾아오셨습니다.

강혜빈 작가 PICK! 📖 「미래는 허밍을 한다」 전문

🎤 『미래는 허밍을 한다』에서 이 부분을 소개해주신 이유는?

💧첫 시집 『밤의 팔레트』 ‘시인의 말’. “내가 너의 용기가 될게”에 이어 『미래는 허밍을 한다』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담긴, 시집이라는 오브제로서 과거의 나와 연결된 독자들에게 다정하게 손 내미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빈집"이란 비어 있음, 그러므로 채울 수 있음, 언제든 올 수 있음, 함께할 수 있음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데요. 누군가에게 빈집이 되겠다는 말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환대한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또 다른 ‘용기’가 되겠다는 겁니다. 시인으로서 나만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어떤 다짐이고요. 현재의 강혜빈이 세상에 맞서는 방식은 다정함이고, 세이렌처럼 마음을 녹이는 허밍을 부르는 거예요.

🎤 『미래는 허밍을 한다』를 읽으며 함께 들을 노래를 추천한다면?

💧 말러 5번 교향곡 4악장 (Mahler Symphony No. 5: Adagietto)

『미래는 허밍을 한다』가 사랑한다는 말 없이도 사랑한다는 말이 들리는 시집이길 바라요. 영화 「헤어질 결심」에 진심이었던 시절에, 말러를 들으며 자주 썼습니다. 누구보다 꼿꼿한 사람을 알아요. 저와 함께 결연하고 단단해진 나의 독자. 당신.

💧 송창식 - 「안개」

특히 2부의 시편들과 어떠한 정서가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지나간 사랑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 홀로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 이제는 영영 잃어버린 어떤 시간들. 이미지 위로 레이어처럼 덮이는 안개. 실체가 없는 슬픔과 멀리 있는 사랑. 노래에선 “눈물은 감추어라” 하고 말하지만, “울고 싶을 땐 울자”고요.

🎤 작가님의 책장에서 문지레터 구독자 분들과 함께 읽고 싶은 문학과지성사의 책을 꼽자면?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우리가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르더라도, 얼마든지 겹쳐질 수 있다.” 물의 근원적 속성과 물방울이 주는 인상에 애정이 남다른 자로서 이 문장과 사유에 매료되었다. 쉼보르스카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시인이다. 그러나 세계의 바닥 깊은 곳에서 냉철한 통찰을 길어 올린다. 인생은 두 번 주어지지 않는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 있음이 더욱 소중히 다가온다. 그는 개인의 실존, 삶과 죽음과 같은 커다란 주제를 다루면서도 현학적인 시어보다는 소박하고 정직한 언어로 삶 속에서 유리 조각처럼 반짝이는 문장을 캐낸다. 빛의 흐름이 느껴지는 그림이나 이미지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단편영화를 보는 듯 생생히 그려지는 시편들. “쓰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내디딜 수 있는 가벼운 걸음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속에서 어떤 장면에 손전등을 비춰야 할지 궁금하다면 그의 뒤를 따라가봐도 좋겠다.

 

📖필리프 들레름,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들레름의 문장은 눈으로 읽는 ASMR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추천하는 책 또한 소소하지만 그래서 더욱 귀한 기쁨들을 이야기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공교로움에 놀라우면서도, 내가 변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점점 더 작은 것들이 좋다. 하찮고 대수롭지 않은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좋다. 정말 멋진 건 그런 것이다.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가볍고 단순하게 말하기. 힘을 빼고 세계가 내는 소리를 경청하기. 사물과 풍경에 조금은 거리를 두고 근사한 냄새를 풍기는, 그러면서 시치미를 떼고 있는 거리의 빵집처럼. 갓 구운 크루아상 먹기, 완두콩 깍지 까기, 맥주 첫 모금의 느낌, 지하 저장고에서 맡는 사과 냄새…… 도드라지는 장면들을 주워본다. 들레름은 사물이나 습관, 순간들을 길어 올려 자세히 본다. 행복은 대수롭지 않은 곳에서 자주 발견된다. 그것을 발견할 마음만 있다면.

💬에디터의 책편지

"부디 네 상상력이 내 상상력을 이겨서

내가 꾀한 모든 자기합리화를 벗겨 내 맨얼굴을 보여주길 바란다."

『당신들의 천국』이 완성한 지성의 정치학으로부터 『서편제』가 풀어낸 토속적 정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의 한과 아픔을 사랑과 화해로 승화시키는 데 한평생 고뇌한 소설가 이청준(1939~2008).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15년이 흘렀습니다. 미백(未白) 이청준 선생의 15주기를 맞이해 『이청준 평전』을 출간하였습니다. 이청준 소설가는 생전 장편 17편, 중단편 155편, 희곡 1편까지 총 170편의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그가 남긴 170편 남짓의 소설들이 쌓아 올린 크고 높은 산을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오르고 헤매어보았을까요? 이 책은 20년 가까이 이청준의 육필 초고와 메모, 일기와 편지, 그리고 최초 발표본과 단행본을 모두 읽고 분석해온 저자 이윤옥이 소설가 이청준의 삶을 글로 복원한 오롯한 기록이자 아주 특별한 '이청준 전작 읽기' 입니다. 올 여름, '이청준 소설'과의 행복한 동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청준 평전』 미리보기

"이청준은 여러 소설에서 직간접적으로 자서전과 자서전을 쓰는 자세에 대해 말했다. 쓰는 주체와 대상이 같은 자서전 쓰기는 자신의 잘못을 똑바로 응시하고 인정한 뒤, 부끄러움과 참회가 있어야 가능하다. 내 생각에는 평전 쓰기도 자서전 쓰기와 같다. 그러면서도 주체와 대상이 다른 평전은 대상의 자기변명이나 합리화를 허용하지 않고, 대상을 더욱 가혹하게 검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나는 이청준이 자서전을 썼다면 내가 쓴 평전보다 더 자신에게 엄격했으리라 믿는다. 그는 평소 자기 잘못에 대해 다소 지나칠 만큼 견디기 어려워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