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세기 동안 프랑스의 심리소설은 이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다시 쓰거나 덧붙이거나 변주하거나 근대화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근대 프랑스 문학사』, 1936) 프랑스 평론가 알베르 티보데는 뱅자맹 콩스탕의 『아돌프의 사랑』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뱅자맹 콩스탕은 이 한 편의 소설로 프랑스 문학사에 우뚝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문학가보다 정치인으로서 더 주목받아왔던 그는, 프랑스혁명과 프랑스 제1제정, 7월 혁명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근대 프랑스 정치사에서도 눈에 띄는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나폴레옹과의 관계에서는 협력과 결별을 오가며 망명과 귀환을 되풀이했다고 해요. 나폴레옹의 백일천하가 막을 내리면서 당시 그의 조력자였던 콩스탕은 다시 한번 국외로 망명해야 했는데, 이 시기에 발표한 소설이 바로 『아돌프의 사랑』이었어요.

20대의 전도유망한 젊은이 아돌프. 사랑의 경험을 해본 적 없던 아돌프는 사랑에 대한 환상을 키워가던 중 P 백작의 초대를 받습니다. P 백작의 집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P 백작의 첩인 엘레노르를 만납니다. 엘레노르에게 사랑을 느낀 아돌프는 P 백작의 우정도 저버린 채 끊임없이 구애를 이어가요. 이 소설에서 콩스탕은 필요 이상의 서술을 하지 않습니다. 독자인 우리가 소설 속에서 읽을 수 있는 정보는 ‘아돌프는 젊고 엘레노르는 아름답다는 것’뿐이에요. 나머지 구체적인 정황을 상상해 채워 넣는 것은 오롯이 독자들의 몫으로 남게 됩니다. 콩스탕의 치밀한 심리묘사, 섬세하고도 명쾌한 문체는, 파국으로 치닫는 삶의 고통을 낱낱이 기록해 자기 파멸에 가까운 고뇌와 절망을 표출해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엘레노르! 그렇다면 나는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저 무리들과 아무런 차이도 없는 존재란 말인가요? 대답해보세요. 우정이란 게 뭐죠? 수많은 군중 속에 있게 되면 괜히 신경이 곤두서고 부끄러워지는 것, 그게 다 우정을 가졌기 때문이 아닌가요?”
엘레노르는 너무 고집스럽게 대하다가 오히려 나로 하여금 엉뚱한 행동을 하게 만들어 우리 두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나와의 만남을 끊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마침내 그녀는 가끔씩 나와 단둘이서만 만나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우리 두 사람의 관계가 이처럼 변하게 되자 그녀가 나에게 부과해온 엄격한 규율에도 변화가 뒤따랐다. 우선 그녀는 나에게 사랑의 고백을 허락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이 사랑이라는 말에도 차츰 익숙해졌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자기도 나를 사랑해왔다고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이 세상에 나보다 행복한 남자가 어디 있을까. 나는 그녀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존경과 헌신을 맹세하면서 몇 시간이고 그녀의 발치에서 보내곤 했다. 그녀는 나와 작별하려고 애쓸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런 심정을 내가 헤아려주었으면 하고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조그만 소리가 들려도 내가 도착하는 것인가 싶어 얼마나 가슴이 설레곤 했는지, 나를 만날 때마다 얼마나 커다란 고통과 기쁨과 두려움이 마음을 조이곤 했는지 모른다고 말한 다음, 자기 자신조차 믿을 수가 없어서 마음의 동요를 감추려고 그처럼 객실에 나가, 전에는 그토록 피했던 무리들과 일부러 어울리게 되었던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나는 그녀에게 그동안 나의 생활과 감정에 일어난 일들을 아주 세세한 것까지 되풀이하여 말했다. 지난 몇 주 동안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이야기는 마치 온 생애에 걸쳐 일어났던 것처럼 생각되었다.
사랑은 일종의 마술과 같은 것이어서 오랜 추억을 대신한다. 사랑은 마치 요술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하나의 과거를 만들어내어, 그것으로 우리를 감싼다. 사랑은 말하자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의 알지 못했던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듯한 느낌을 안겨주는 것이다. 사랑이란 한순간에 타오르는 하나의 불빛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것처럼 여겨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랑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얼마 안 가서 그것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존재하고 있는 동안은 지나온 시간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장차 다가올 시간 위에도 밝은 빛을 뿌려주는 것이다. 

- pp.50-51

길고 낯선 제목처럼 초현실적이고 부조리해 보이는 기이한 모험담을 그리고 있는 특이한 작품이다. 그러나 외적인 비현실성과 달리 이미상의 작품은 세상의 한계와 허상을 되비추는 이상한 현실적 거울로 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_강동호(문학평론가)

교착적인 재현의 시도가 지금 이 소설을 다루는 것이 어째서 중요한가에 대한 질문을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낯선 좋음’을 감각하게 만들었다._선우은실(문학평론가)

만약 우리가 어떤 소설이 좋은 소설인지 이야기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기준 중 하나가 매혹의 경험이라면, 이미상의 소설은 정확히 그런 의미에서의 좋은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_이소(문학평론가)

반복해서 읽어도 여전히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어떤 이야기로 읽을 수 있을까 자문해보면 많은 답이 떠올랐는데, 그만큼 대범하면서도 치밀하게 여러 층위가 겹쳐 있기 때문일 것이다._이희우(문학평론가)

살아감 끌려감이 안겨주는 수치심에 대해 토로하는 작품이다._조효원(문학평론가)

돌출한 앎의 복판에서 모름을 자꾸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 소설의 힘을 응원하고 싶었다. 그것은 어쩌면 나에게 모든 소설들을 응원하는 마음이기도 했다._홍성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