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삶을 낭비하는 게 지겨워지면 연락하세요”

2023. 2. 1.

2023.02.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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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문학과지성사에서 보내는 책편지, 문지레터입니다.

어느새 2023년의 첫번째 달이 지났어요. 한 달 전 새해를 맞아 다짐했던 일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달력을 새로 한 장 넘기게 된 오늘은 소홀했던 다짐들을 되새겨봐도 좋을 것 같아요. 추운 날들이 계속되는 요즘, 오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기게 되는 책과 기후위기에 대해 생각해보는 책을 소개할게요.

오늘의 💌 문지레터

이 삶을 낭비하는 게 지겨워지면 연락하세요, 권오경 첫 장편소설
거부할 수 없는 미래,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2월의 시─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 이 삶을 낭비하는 게 지겨워지면 연락하세요

“허우적거리지 않는 인간이 있을까.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나는 완벽하고 단단한 길 위에 있다고. 흔들림 없는 믿음은 때로는 위태로움과 닿아 있다. 사랑과 소유욕과 종교와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거짓말. 이야기의 끝에 다다른 당신은 반드시 첫 장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아래에서 흐르고 있던 큰 슬픔을 볼 것이다.” _오지은 (작가, 음악가)

10년의 세월에 걸쳐 세상에 선보인 한 편의 소설로 미국 문학계를 떠들썩하게 한 소설가가 있습니다. 이 소설로 한국 태생의 미국 작가인 권오경R. O. Kwon은 『뉴욕 타임스』 선정 ‘주목받는 작가’에 선정되었어요. 퓰리처상 수상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이 읽고 ‘권오경의 소설은 곧고 천천히 타오르는 도화선이다. 이 소설을 읽는 것은 폭발할 대상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거침없는 불꽃을 따라가는 것이다’라는 추천의 말을 남긴 소설, 『인센디어리스』를 소개합니다.

「애프터 양」「파친코」의 코고나다 감독 연출 드라마화 결정

신앙을 잃은 윌, 의미를 찾는 피비, 종교를 만든 존
사랑과 집착 사이, 상실과 믿음 사이, 열정과 광신 사이

📕 권오경 『인센디어리스』

💬 에디터의 책편지

컬트 종교·테러라는 민감한 소재를 거침없는 문장으로 그려내며 미국 문단에서 주목받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 권오경R. O. Kwon의 첫 장편소설 『인센디어리스The Incendiaries』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한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피아노 신동으로 자라났으나 엄마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죄책감에 시달리며 충동적으로 살아가는 파티걸 피비, 전도자였으나 종교를 버린 윌 켄달,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과거를 가진 ‘제자(弟子)’ 창립자 존 릴. 피비와 윌은 에드워즈 대학교에서 만나 사랑하게 되지만, 피비의 상실감과 상처는 메워지지 않고 피비는 존 릴의 종교에 이끌리게 됩니다. 윌은 피비의 극단적인 선택을 이해해보려 안간힘을 쓰지만 쉽지 않습니다.
『인센디어리스』에는 작가 권오경의 실제 경험이 곳곳에 배어 있는데요. 피비처럼 서울에서 태어나 기억나지 않을 만큼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왔고, 윌처럼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자라다 열일곱 살에 신앙을 잃었습니다. 권오경 작가는 신앙을 잃은 고통이 이 소설을 쓴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고 해요. 인터뷰에서 『인센디어리스』를 집필하면서 가졌던 목표를 ‘많은 사람이 신앙의 양극단에 서 있습니다. 신을 믿는다는 게 뭔지 아는 사람들과 아예 모르는 사람들, 이렇게 나뉘죠. 그 사이의 균열을 넘고 싶었습니다. 양쪽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게……’라고 밝히기도 했어요. 미국에서 활동하는 아시아인 여성으로서, 성적 지향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권오경 작가가 이 세상 모든 소수자들, 부당하게 외로웠을 사람들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를 보냅니다.

📖 권오경 『인센디어리스』 미리보기

존 릴이라고 하는 사람. 알아?
모르겠는데.
아무것도 아냐. 그냥 자꾸 눈에 보이는 것 같은데……
누군데 그래?
그녀가 허둥거리며 설명했다. 빅스가 촛불을 붙여주자 그녀는 고맙다고 인사했다. 몇 번이나 이야기를 들은 끝에야 나는 정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요전 날 밤 시내에 있는 클럽에 갔다. 거기서 택시를 부르려고 손에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는데, 누군가가 벽에 기대 서 있었다. 그녀가 전화를 끊자 그가 피비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그를 못 알아봤지만 자기 탓이겠거니 생각했다. 만난 적 있는 사람인데 자신이 기억을 못 하는 것뿐이라고. 그래서 예의상 아는 척 인사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행동을 무시하고는 말했다. 나는 존 릴이라고 해요. 당신은 피비죠? 당신과 마주치고 싶었어요. 어떻게 그런 상황을 마련할까 생각했는데, 마침 당신이 나타났군요.
그러더니 그는 그녀의 삶에 대한 자잘한 사실들을 나열했다. 사소한 정보들이긴 했지만 그가 알 턱이 없는 내용이었다. 그는 접힌 쪽지 한 장을 피비에게 건네더니 말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참 좋겠군요. 하지만 당신의 결정에 달린 일이죠. 이 삶을 낭비하는 게 지겨워지면 연락하세요.
나는 말했다. 삶을 낭비하는 게 지겨워져? 흠.
피비가 말했다. 이상하지 않아? 오, 게다가 신발도 안 신고 있었어. 처음에는 친구들이 나를 놀리려고 장난치는 건가 했어. 하지만 장난은 아니더라고.
그녀가 잔을 빅스에게 건넸다. 위층에서 남자들이 아카펠라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혹시 존 릴이라는 사람에게 연락해보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답했다. 아니, 하지만 그런 정보들을 어떻게 알았는지 물어볼 걸 그랬다 싶긴 해. 그때 받은 쪽지는 아직 갖고 있어. 그녀는 지갑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줄이 쳐진 평범한 종이였고 접혔던 부분이 찢어져 있었다. 그리고 존 릴이라는 이름이 대문자로 인쇄되어 있었다. 나는 한번 전화해보라고 권했다.
왜?
네가 신경 쓰고 있잖아. 필요하면 내가 도와줄게. 만나러 갈 때 같이 갈 수도 있고.
-pp.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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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부할 수 없는 미래,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한국 사회의 솔루션

전 세계에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는 이번 겨울. 국립기상과학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후는 지난 30년간 크게 변해서 여름은 20세기 초에 비해 19일 길어진 반면 겨울은 18일 짧아졌다고 합니다. 폭염, 폭우 같은 기상특보 발령도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는데요. 이상기후가 단순히 ‘날씨’의 문제가 아니라 ‘재난’의 영역이 된 것이에요. 그동안 세계 각국은 경제적 손익을 따지며,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제안된 온실가스 감축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왔는데요. 기후변화가 재난 수준으로 가시화되자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정책을 내세우고 구체적인 조치에 합류한 국가가 늘어났습니다.
그럼에도 경제성장을 위한 모든 활동에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로 이어지기 때문에 기후변화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새롭게 떠오른 화두가 바로 ‘탄소중립’입니다. 탄소중립은 탄소 배출을 무작정 막을 수 없다면, 배출한 만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실질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자는 개념이에요. 기존 산업을 저탄소·탈탄소 에너지 구조로 완전히 바꾸거나, 기존 산업을 유지하면서 기술 개발을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안입니다. 또는 탄소를 포집하고 저장해, 결과적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방법도 있어요. 어느 방안이든, 과학기술을 통한 혁신적 연구 개발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20년 기준 세계에서 여덟번째로 많은데요. 연간 배출량을 살펴보면 전 세계 배출량의 1.9퍼센트 수준입니다.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이 우리 코앞에 닥친 과제인 만큼 기후변화가 무엇인지, 탄소 배출을 왜 줄여야 하는지 이제는 모든 사람이 이해해야 합니다.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결국 80억 인류 모두의 생활 방식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엮은 『탄소중립』에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과학자들의 생생한 글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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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의 시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2월의 첫 날을 맞아 여러분께 문학과지성사 ‘시작’ 달력에 실려 있는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바로 진은영 시인의 첫번째 시집에 실린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인데요. 올해는 진은영 시인의 첫 시집인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이 출간된 지 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첫 시집 출간 20주년을 맞아 특별한 기획을 준비 중에 있으니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