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5 (수)

🦊 어떤 독자분께서 서평에서도 공유해주셨듯, 저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근간으로, 여성학적 시각에서 노동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 에세이 『경험이 언어가 될 때』 출간을 축하드려요. 여성의 노동과 시간에 대해 쓴 첫번째 책에 이어 두번째 책을 출간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 사실 좀 걱정이 많았습니다. 처음에 낸 책이 평가가 좋아서, 혹시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이번 책도 많은 분들께서 응원을 해주시긴 했지만, 여전히 책을 내는 것은 떨리는 일인 것 같습니다.

🎤 글을 쓰실 때 작가님만의 루틴이 궁금해요

🦊 글을 쓸 때의 특별한 루틴은 없습니다. 그냥 평소처럼 생활합니다. 저는 밤 11시에서 1시 사이에 잠이 들어, 아침 8시에서 10시 사이에 일어나는 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강아지 밥을 주고, 강아지 산책을 시킨 후 공부를 시작하여 특별한 일이 없는 한 6시까지 계속합니다. 아침밥을 먹은 날에는 점심을 먹지 않고요, 점심을 먹지 않고 시작한 날에는 점심을 간단하게 먹습니다.  저녁 6시 이후에는 강아지 밥도 주고 산책을 하고, 수영하러 가기도 하고, 티비도 보는 등 자유롭게 생활합니다. 평일에는 이 루틴으로 살고 있고, 주말은 아무 생각 없이 쉬려 노력합니다. 강아지와 함께 근교에 나가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전업 대학원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저 자신이 규율적이지 않으면 (신체 및 정신) 건강을 지키기가 어렵겠더라고요. 공부는 사실 엉덩이가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맞추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논문을 쓸 때도 이 루틴대로 썼기 때문에, 건강하게 논문을 마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경험’에 대해 깊게 사유하는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지나치지 않고 사유하게 만드는 경험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하시는 편일까요?

🦊 잠을 자기 위해 누었을 때, 혹은 운전을 할 때와 같이 혼자 생각을 할 시간이 있을 때, 내가 오늘 느낀 ‘불편함’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왜 나는 불편했는지, 왜 나는 알고 싶지 않았는지, 왜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는지. 예를 들면, 운전을 시작하면서 도로 위에 상당히 많은 차들이 다른 사람들의 실수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다들 너무 조급한 거예요. 그러다 어느 날 제가 평소보다 집에서 늦게 출발해서 수업에 늦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날, 저도 예민해지더라고요. 평소에는 거의 모든 차들에 양보를 해왔었는데, 그날은 갑자기 ‘내가 만만하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날 다시 이 일에 대해 생각해보았더니, 시간에 촉박한 마음 때문이더라고요. 그래서 그 후로는 핸드폰 네비가 안내하는 이동시간보다 20~30분 정도 더 걸린다고 생각한 후 출발합니다. 길을 잘못 들어도, 다른 사람에게 양보를 해주어도 넉넉할 만큼의 시간을 두고 운전을 하게 되었어요. 자기 자신의 변화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 그 과정에서 경험이라는 것이 언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소진 작가 PICK! 📖 『경험이 언어가 될 때』

🎤 《경험이 언어가 될 때》에서 이 부분을 소개해주신 이유는?

🦊 사실 이 구절은 제가 이 책을 쓰면서 깨닫게 된 내용입니다. 저는 항상 그분을 용서하고 싶었는데,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도 충분히 납득이 되지 않더라고요. 왜 그랬는지 이해하고 싶다고 말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미안했다’ 수준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죠. 지난 시간 동안, 피해를 당한 사람으로서 나는 어쩌다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서 다시 돌이켜보고, 스스로에게 되물었지만 그분은 반성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반성을 하지 않아도 삶에 별다른 문제가 없기에 나와는 다른 시간을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한동안 나는 그럼 누구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죠. 다른 연구에서 만난 가해자는 사과하지도 않는데, 피해자들도 용서해야 한다는 강박에 힘겨워하고 있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거예요. 너를 위해서라도 용서해라. 이해해라. 저도 용서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누구를? 어떻게? 그러다 문득 이 책을 쓰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가해자의 존재에 매여 있지 않게 되는 것이 이 경험의 종료일 수 있겠다고. 그래서 “선언”한 것입니다.

🎤 『경험이 언어가 될 때』를 읽으며 함께 들을 노래를 추천한다면?

🦊제가 사실 공부를 직업으로 삼게 되면서 음악을 잘 듣지 않아서, 요즘 음악을 잘 모릅니다  20대 초반에 들었던 노래가 전부라. 꽃다지 ‘주문’과 god의 '13414'를 추천하겠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저들이 말하는 국민 중에 너와 나는 간데없고 저들의 계획속에 너와 나의 미랜 없지’ ‘사회 만드는 너희들의 외면 속에 생겨나는 우리나라의 피 그 피 보고 있는 너희들은 회피 도무지 무슨 생각 돈 가지고 살아 돈밖에 없어 돈 돈 머리까지 돈 불쌍한 사람들아 돈에 죽고 돈에 살아’

🎤 작가님의 책장에서 문지레터 구독자 분들과 함께 읽고 싶은 문학과지성사의 책을 꼽자면?

🦊 『랭스로 되돌아가다』  자기분석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자의 계급과 제 계급이 유사하다 보니, 읽으면서 많은 경험들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고요. 프랑스의 정치사회문화적 배경이 한국과 다르면서도 유사한 지점들이 있어, 내가 쓴다면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를 고민하면서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시간이 나면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도 추천해드려요. 이 소설은  미스터리를 차용하여 계급과 퀴어, 가족, 국가를 교차하며 ‘폭력’을 다양한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때면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립, 단순하게 처리되는 사건의 복잡성, 여성과 남성이라는 고정적 젠더의식에서 기반한 획일적인 캐릭터 등이 아쉬웠던 페미니스트 미스터리 애독자 분들이 읽으신다면 미스터리 장르에서 비롯된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마찬가지로 최근의 페미니즘 서사에 약간의 염증을 느끼시는 분들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계급의 문제를 논하지 않는 섹슈얼리티 서사에, 사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지만 사적인 것에 매몰되는 것만 같은 서사에 저는 약간 지쳐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소설은 하나의 테마에 갇히지 않는 것이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책은 선물을 받고 난 뒤 한동안 책장에 그대로 꽂혀 있었습니다. 학자로 등장하는 소설 속 화자의 말처럼, 저 또한 제가 연구하는 분야가 아닌 책은 도통 시간을 내서 읽기가 어렵거든요. 마릴린 먼로에 대한 보통의 상징성 또한 이 책을 거부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대체로 마릴린 먼로란, 섹슈얼한 미의 화신으로서 대중매체에서 언급되곤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러한 호명이 늘 불편했습니다. 제게 마릴린 먼로는 젠더와 자본에 의한 폭력을 의미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마릴린 먼로는 무슨 상징으로 호명될까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또 다른 팬심으로, 작가님이 오래오래 건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읽어보셨던 걸까요?

“페미니즘적 시각은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질문을 던지면서 훈련되고 학습된다”

구독자 여러분의 서재를 소개하는 💌문지레터의 특별 코너! 📚독자의 서재는 독자 여러분이 평소 좋아하는 문학과지성사의 책을 직접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비젤 님의 서재를 소개할게요.

💻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 비젤이라고 합니다. 한국문학을 주로 포스팅하고 있습니다^^

📚 평소 좋아하는 문학과지성사의 책, 최애 best 3를 꼽자면요?

💻 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신종원 『습지 장례법』, 채호기 『수련』 이렇게 3권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  『죽음의 한 연구』, 『습지 장례법』, 『수련』 을 최애 책으로 정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 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의 관심은 단순 호기심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유년 시절 친구 아버지의 서재에서 처음 보게 된 이 책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그렇게 성인이 되어 우연히 헌책방에서 1985년 초판본을 구하게 되었고 지금껏 애장도서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신비스러운 유리에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의 일생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신종원 『습지 장례법』은 사람이 죽으면 습지에 수장하는 관습을 지닌 신씨 혈족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마음에 들었어요. 신종원 작가의 집안 이야기인 이 소설 또한 죽음이란 소재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소설로 최근 읽은 소설 중에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채호기 『수련』은 군대에서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독서광 선임이 휴가 복귀하면서 가져온 '수련'을 읽게 되었는데 채호기 시인의 집요할 만큼 섬세한 시선으로 수련을 바라보며 표현한 매력적인 수련 연작들이 제 마음을 두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