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를 얼렸다, 상상력이 열렸다!"

2023. 5. 2.

2023.05.03 (수)

💌

안녕하세요. 문학과지성사에서 보내는 책편지, 문지레터입니다.

일년 중 가장 싱그럽고 화창한 날들이 펼쳐지는 5월의 첫 주 입니다.🧚‍♂️ 잠시 쉬어가는 날들도 많고 챙겨야 할 것도 많은 한 달 인데요. 오늘 소개하는 책들이 문지레터 구독자 여러분들의 쉼의 나날에 함께 하였으면 합니다. 그럼 오늘의 레터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의 💌 문지레터

얼음 속에서 얼크러지는 여섯 가지 이야기, 『SF 보다 Vol. 1 얼음』
닫힌 문 너머 해방을 불러오는 용기, 이소호 세번째 시집

📕 더없이 놀라운 S(Story), 끝없이 새로운 F(Frame)

무한하게 펼쳐지는 S-F의 세계

독자의 환상적인 사유를 자극하는 문학과지성사의 새 기획, <SF 보다>가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가제본 선공개로 많은 독자분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새로운 SF 엔솔로지, <SF 보다 Vol.1 얼음>을 소개합니다.

얼음속에서 얼크러지는 여섯 가지 이야기

얼음 표면에 얼비치는 여섯 가지 가능성

📕 『SF 보다 Vol.1 얼음』

💬에디터의 책편지

한국문학의 좌표계에서 유의미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여섯 작가가 『SF 보다―Vol. 1 얼음』에서 ‘얼음’을 주제로 다채로운 상상력을 펼쳤습니다. 곽재식 작가의 「얼어붙은 이야기」부터 구병모 작가의 「채빙」, 남유하 작가의 「얼음을 씹다」, 박문영 작가의 「귓속의 세입자」, 연여름 작가의 「차가운 파수꾼」, 그리고 천선란 작가의 「운조를 위한」까지. 모두 “눈앞의 얼음을, 혹은 눈앞에 없는 얼음을, 골똘히 바라보고, 관찰하고, 상상”한 이야기들인데요. 흐르지 않고 무언가를 붙잡는 현실 세계의 얼음처럼, 이 여섯 단편 속 얼음들은 비현실을 부유하는 ‘사변적 즐거움’을, 그리고 독자의 시선을 매혹적으로 붙듭니다.

음료에 들어 있는 아이스 큐브, 뾰족한 설산, 비정형의 빙하 등 현실 세계에서 자유로이 꼴을 달리하는 얼음은 각 작품 속 세계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가능성을 열어 보이는 이 책을 통해 당신은 어떤 ‘얼음’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은가요?

📖 『SF 보다 Vol.1 얼음』 미리보기

이 모든 것은 이미 만들어져 있고 나는 미리 그것을 파악하고 있다. 나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다. 그게 결말이다.

―곽재식, 「얼어붙은 이야기」

당신이 그 안에서 너무 춥지 않기를……
언젠가, 이 세계가 그때까지도 무사하다면, 당신 아이들의 아이들의 아이들과 만날 행운을 누리기를……
나는 이제 그것이 어떤 기억이며 누구의 목소리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구병모, 「채빙」

나는 수프를 떠 입에 넣었다. 뜨거운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위장이 요동쳤다. 그제야 아이가 죽은 뒤 줄곧 먹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수프를 부지런히 떠 넣었다. 눈물이 수프 그릇에 뚝뚝 떨어져도 숟가락질을 멈출 수 없었다.
―남유하, 「얼음을 씹다」

“그러니까 외계에서는 축구 따위 하지 않을 거예요. 지성체들은 애정이라는 감각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거니까요. 아마 사랑을 넓고 묽게, 과열되지 않는 형태로 발전시켰을 거예요.”
―박문영, 「귓속의 세입자」

이 교환은 배를 부르게 하거나 미각을 즐겁게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모가 떠난 후 균열이 일고 뻥 뚫린 마음을 조금은 견고하게 만들어주었다. 마치 이 아파트가 붕괴하지 않도록 붙들고 있는 지하의 선샤인처럼.
―연여름, 「차가운 파수꾼」

흥분과 희열에 뛰는 심장은 뜨겁지 않고 차가웠다. 얼음이 가슴을 문지른다. 그 심장이라면 운조는 태양도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양의 열기마저 운조의 심장을 데울 수 없을 거라는 오만과 자만이 몸을 감쌌다. 나쁘지 않았다. 운조는 그런 감정을 느껴본 지 오래되었다. 없었을지도 모른다.
―천선란, 「운조를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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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문 너머 해방을 불러오는 용기, 이소호 세번째 시집

📕『홈 스위트 홈』

💬에디터의 책편지

2014년 『현대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일상성을 허무는 전위적이고 투쟁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제37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소호 시인의 세번째 시집 『홈 스위트 홈』을 소개합니다. 여성 주체의 역사적 고통을 더듬으며 현실의 탈출구를 모색하는 이소호의 시 세계는 성차별, 약자 혐오 등 가부장제 사회의 어두운 잔재를 거침없이 노출하며 동시대의 윤리 회복을 호소하는데요. 데뷔 시집 『캣콜링』에서 선보인 파격적인 목소리가 이번 시집까지 이어져 밀도를 강화한 시적 자아와 만나 원초 집단의 아이러니를 예리하게 해부하고 있습니다. 특히 무의식의 표정을 섬세하게 다루는 것으로 정평이 난 비주얼 아티스트 '연여인'의 일러스트가 시와 어우러져 독자의 공감각을 더욱 풍부하게 넓혀주는데요. 이소호 시인의 시는 부지불식간에 개인에게 체화된 집단의식의 저변을 집요하게 파헤치며 미래를 모색합니다. 혼란과 고통으로 점철된 개인사를 뛰어넘어 자아의 역사가 나가야 할 방향과 도약 지점을 똑바로 겨누는 그의 시. 언젠가는 우리 모두 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 『홈 스위트 홈』 미리보기

사랑하는 막내딸아 이곳에는 땅에 납작 엎드려 사는 풀로 가득 차 있단다 긴 겨울이 끝나고 푹 꺼진 축축한 길 없는 길로 서로의 집을 찾아가곤 하지 아버지는 항상 언제 꺼질지 모르는 빛 속에서 살고 있단다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손금만큼 길다는 생각이 든단다 나는 저렇게까지 길게 죽음과 가까이 닿은 적이 있나 싶어서. 하얀 노을이 붉은 태양을 삼키고, 빗속에서 한국을 그리곤 하지 젖은 흙 한 줌마다 한 글자만큼의 무게가 있고, 젖은 종이마다 저 멀리 심겨 있다던 한 그루의 나무가 생각나는 밤이다 딸아 이곳은 믿기 어렵지만 아침이 계속 되는 밤이란다 빛이 계속되는 아침이란다 그래서 하루를 끊임없이 살아내야 하는 고된 밤이란다
―「툰드라」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