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마주 보면서 관계가 맺어진다. 시선의 교환 속에서 인격이 체감된다. 사형수에게 용수라는 둥근 기구를 씌워 얼굴을 가리는데, 그의 눈을 보며 사형을 집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인지상정이 동물에게까지 확대된 것이 앞서 소개한 제선왕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소는 이미 대면을 했기 때문에 차마 도살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고, 양은 아직 그 모습을 못 보았기에 희생 제물로 대신 바치라고 명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거꾸로 뒤집으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인을 베풀기가 어렵다는 뜻도 된다. 사람끼리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짐승처럼 또는 짐승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비대면’이 ‘비인간화’로 이어지는 상황은 종종 목격되거나 경험된다.   

비인간화는 여러 상황에서 벌어지는데, 주민들의 구체적 삶을 외면한 채 원칙과 기준만 따지며 일을 처리하는 탁상행정도 전형적인 사례다. 조직이나 시스템이 거대해질수록 관료주의가 만연하고 사람은 업무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비대면이 비인간화로 이어지는 또 다른 예는, 노약자나 장애인, 빈곤층 등 사회적 취약 계층을 외면하는 것이다. 의식적이라기보다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생활공간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과거에는 부자와 빈자가 한데 어우러져 사는 동네가 많았다면, 산업화·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아파트 단지가 늘어나고 경제 수준에 맞춰 거주지가 구획화되어갔다. 같은 단지 안에서도 평수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고, 임대 아파트 주민들과는 거리를 두려고 한다. 한때는 장애인도 마을에서 함께 살며 자연스럽게 눈에 띄었는데, 이제는 대부분 집 안에 감금되다시피 지내거나 시설에 격리되어 살아간다.

지금 우리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엄청난 볼거리를 접할 수 있지만, 세상과 맞닿는 접촉면은 오히려 점점 비좁아지는 듯하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여기저기에 생겨난다.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무의미하고 하찮은 존재로 주변화되는 것이고, 투명인간으로 취급되면서 사회의 성원권이 박탈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비대면에 수반되는 비인간화, 타인이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사물로 대상화되는 것은 양극화가 심화되는 우리 사회의 중대한 도전이다. 점점 깊어지는 소외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 1부 「대면―얼굴을 마주하는 오롯함」, pp. 47-48에서